나는 언제부터인가는 모르겠지만
한길을 우직하게 걸어가는 거북이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우직함 후에 진정한 승리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나는 어린 시절부터 비행기를 흠모하며 어른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비행기에는 후진기어가 없어
뒤로 물러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중에서도 특히 전투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전투기는 전천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 어떤 상황 앞에서도
명령만 떨어지면 그냥 치 솟아오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끔 전투기를 보며 전천후 신앙과 목회를 사모했습니다.
나는 거북이를 생각하며 토끼의 영리함보다
언제나 한길을 걷는 거북이의 우직함에 반했습니다.
그것은 아마 내가 아직까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나는 또 대나무를 유난히 좋아합니다.
대나무는 4년 동안 뿌리를 내린 후에야 5
년째 비로소 위로 뻗어 올라가는 속성이 있습니다.
나는 조급함이 늘 장애물이 되어 나를 실족케 합니다.
그래서 충분히 밑으로 뿌리 내린 후에야
위로 뻗어 올라가는 대나무를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저는 새들 중에서는 독수리를 무진장 좋아합니다.
어쩌면 독수리를 좋아한다기보다 독수리의 삶을 좋아하는 듯 합니다.
독수리는 언제나 외롭지만 결코 약하진 않습니다.
독수리는 언제나 높은 곳에 앉아 먼 곳을 응시하기 때문입니다.
독수리의 야무짐은 새끼들의 훈련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마치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훈련시키심과 동일합니다.
독수리는 새끼들이 둥지 속에만 안주하려는 순간
편안한 둥지를 흩어 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땅에만 머물려는 새끼들을
억지로 창공으로 끌고 올라갑니다.
그리고 매몰차게 낭떠러지로 떨어뜨립니다.
새끼들은 생각합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그러나 그 즈음에 어미 독수리는 급속히 하강하여
새끼들을 가슴에 품고 또 다시 비상(飛上)합니다.
몇 번이고 계속 반복함으로
마침내 독수리 새끼는 하늘의 왕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닭이나 철새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우릴 기필코 독수리로 키우실 생각이십니다.
폭풍우가 살을 에이고, 눈보라가 뼈를 후비는 날씨가 다가오면
모든 동물들은 각기 자기 집으로 몸을 숨기지만
독수리는 오히려 폭풍우와 눈보라를 지치게 합니다.
나는 독수리를 보면서 주님의 심정을 눈치 챕니다.
비행기를 보면서 하나님의 시나리오를 꿈꿉니다.
곧게 뻗어 가는 대나무를 보면서
굽이치는 삶의 여정 속에서도
올곧아야 하는 천명(天命)을 되새겨봅니다.
거북이의 우직함과 대나무의 올곧음과
전투기의 전진성과 독수리의 강인함을 삶의 지표로,
목회사역의 균형성으로 뿌리내리고 싶습니다.
오늘 새벽녘 아무도 모르게 소리도 없이 스르르 다가와서
이미 내 옆에 있음으로 존재해버린 후덥지근한 계절의 변화처럼
그냥 오늘도 아무설명도 통보도 없이 슬며시 스며든
삶의 질곡들과 고난의 무게로 인하여
또 무너짐과 심해의 압력을 견뎌야 하지만
그냥 아무도 모르게 찾아왔던 고난이
언젠가 아무도 모르게 슬쩍 떠나버린다는 것을 알기에
크게 당황치 않습니다.
그냥 오늘 하루가 주어졌기에 거북이의 속도를,
때로는 소리 없이 자라 가는 대나무의 성숙을,
때로는 비행기의 뒤로 갈 수 없는 속성을,
때로는 폭풍우를 지치게 하는 독수리의 야성을 품으려 합니다.
이제는 땅에서도 하늘을 살려합니다.
대나무를 보면 30년을 준비하여 3년 일하셨던 주님이 생각납니다.
전투기가 날아가면 질풍처럼 주님과 복음을 위해
달려갔던 바울이 생각납니다.
거북이를 생각하면 40년 광야 길을
한결같이 걸어 갔던 모세가 생각나고
칠 년을 하루같이 여겼던 야곱이 아련히 보고파 집니다.
또한 독수리를 보노라면 평생을 악천후와
담대하게 싸웠던 다윗이 느껴집니다.
이제 대나무와 전투기 그리고 거북이와 독수리는
내 삶과 목회의 주춧돌입니다.
아직까지는 흉내조차도 못 내고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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