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했다.
마찬가지로 누구든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얻을 수 없다.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은
살을 빼는 일만큼이나 힘들고 어렵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창조적인 역사와
하나님의 나라의 선한 역사는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은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자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감을 먹기 원한다면 감나무를 흔들어라도 보고
돌멩이라도 던져보아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예를 들어 새벽기도에 나가려면 알람을 맞춰 놓고
일찍 잠을 자고 그리고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늦게 자고 알람도 안 맞춰 놓고
'하나님의 뜻이면 나를 깨워서 교회까지 데려다 주세요.'
라고하면 안 된다.
신앙생활은 마라톤과 같다.
100m 달리기가 아니다.
42.195km 를 끝까지 완주해야 하는 경기이다.
마라톤을 웃으며, 노래하며,
이야기하며 달리는 사람은 없다.
심장이 터질듯 한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달리고 또 달려야하는 것이다.
마라톤은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경기이다.
단거리를 뛰고 죽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마라톤은 잘못하면
경기 중에 죽을 수도 있다.
그만큼 자기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신과의 싸움이 치열한 경기이다.
그러므로 그 한계를 뛰어 넘은 자에게는
만백성의 찬사와 함께
영광의 월계관이 주어지는 것이다.
행14:22에 보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가 복을 소유하고
영적으로도 신령한 경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심장이 터질듯 한 육체의 한계를
끊임없이 뛰어넘어야 한다.
주님의 생애를 보라.
공생애를 앞에 두고 육체의 한계를 넘으셨다.
광야에서 40일 동안을 금식하시며 기도하셨다.
외로움과 배고픔의 한계이다.
그 한계를 뛰어넘자, 이번에는 마귀가 나타나
육적인 유혹, 혼적인 유혹, 영적인 유혹으로 시험해왔다.
그러나 주님은 3종류의 유혹과 한계를
말씀으로 뛰어 넘으셨다.
그러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위대한 공생애가 열린 것이다.
사도요한을 보라.
온갖 고문과 핍박을 견뎌내고,
밧모 섬으로 유배되는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
그러자 하늘 문이 열리고 계시록을 받아 적을 수 있었다.
욥은 참으로 어렵고도 처절한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은 사람 중에 하나이다.
그는 자녀를 모두 잃는 아픔의 한계를 넘었다.
재산을 모조리 잃는 손해의 한계를 넘었다.
아내의 원망과 가출이라는 기막힌 배신의 한계도 넘었다.
마지막 극심한 질병을 통해
육체의 한계를 훌쩍 뛰어 넘었다.
그리고 결국 절대배가의 축복을 받았다.
요셉은 젊은 날에 정욕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
하나님은 그를 높이 세워 영광 받으셨다.
사도 바울은 말할 것도 없다.
오죽하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을까?
매 맞음의 한계, 버림받음의 한계, 억울함의 한계,
이별의 한계, 헐벗음의 한계, 강도에게 위협 당하는 한계,
풍랑의 한계, 배고픔의 한계를 날마다 인내하였고
평생을 그렇게 한계를 뛰어 넘는 삶을 살았다.
그런 바울에게는 삼층 천이 열리는 특권이 찾아왔다.
하나님은 모든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은 바울을
당신의 빼어난 종으로 사용하셨다.
지금도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느라고
죽음의 문턱에까지 다가가는 수많은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들로 인해서 천국은 확장되고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에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주문하신 것은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으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새벽에 일어나야
만나를 거둘 수 있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니까 수면이라는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잠에 취하면 그날은 굶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어야 했다.
그러므로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은
생존과 연관된 필연적 요소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키는 일에
새벽을 깨우는 방법을 사용하신 것이다.
축복이나 신령한 것이나 응답을 원한다면
애굽에서 길들여지고 오랜 시간 학습된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으라'는 것이다.
심장이 터질듯 한 죽음의 문턱을 뛰어 넘고서
마침내 결승점에 도착한 마라토너에게
월계관이 주어지듯이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죽기 살기로 예수를 믿고
사명 감당하는 일에 일사각오의 결단과 열정으로
충성을 다한 자들에게도 구름 같은
수많은 증인들의 찬사와 함께
썩지 않을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영원토록 주님 식탁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영광도 누리게 될 것이다!(눅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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