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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영감(靈感)이 충만한 신령한자가 되게 하소서! 홈지기 2025-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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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영감(靈感)이 충만한 신령한자가 되게 하소서!


탈무드에 보면 '신은 부서진 것들을 사용 하신다'는 말이 있다. 낱알 그대로인 밀로는 빵을 만들 수가 없다. 밀을 부서뜨려 밀가루가 되어야 비로소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다. 믿음은 영글어야 되고 자아는 부서져야 한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라도 사용하실 수 있으시다. 그러나 자아가 너무 강한 사람은 쓰지 않으신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 중 하나는 깨지지 않은 상태로 유명해지고 부서지지 않은 채로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다. 거센 파도가 노련한 항해사를 만들어 내듯이 끝이 안보이는 혹독한 광야학교는 우리의 거친 자아를 부드럽고 곱게 부서뜨린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내가 죽는 것이고 문제해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깨지는 것이다. 신령한 은혜보다 더 사모할 은혜는 내가 고운 가루처럼 부서지는 은혜다. 부서지지 않은 채 은혜를 받고 쓰임 받으면 그런 사람은 곧 '산신령'(=신비주의자)이 되고 만다. 부서지는 경험이나 광야학교를 거치지 않은 채로도 크게 쓰임 받을 수도 있고 큰일을 할 수도 있다는데 함정이 있다. 착각하지 말라! 쓰임 받는 것과 하나님께 인정받음은 별개다. 직분의 내용과 깨어짐(성숙)의 사이즈는 또한 별개일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산신령'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깨어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무엇인가? 깨어진 사람보다 산신령(?) 숫자가 더 많은데 있다. 교회는 많은데 제자는 적고, 신자는 많은데 성도는 적고, 꽃은 피어도 열매는 없고, 성장은 되는데 성숙은 덜됨이 위기이며, 참 신령의 부재! 그것이 문제이다. 참 신령이란 깨어짐을 전제로 한 신령함이다. 자아가 죽은 후의 신령함이다. 깨어짐과 부서짐 없는 신령함은 주님 일에 장애가 되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옥합이 깨뜨려져야 향유가 흐르고 반석이 터질 때 생수가 흐르지 않던가? 대장장이는 쇠붙이를 풀무 불에 달궜다가 또 물에 담궜다가 그것도 모자라 큰 망치로 후려친다. 그러나 그렇게 들볶인 쇠붙이가 마침내 소중한 연장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선한 도구로 쓰임 받는다. 하나님은 우릴 단련시키시는 대장장이 되신다. 하루도 쉴 날이 없이 우리를 불에 담궜다가 물에 넣었다가 겨우 숨 좀 돌릴 만하면 또 다시 후려치신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기력조차 쇠하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단단한 자아가 완전히 부서지기까지 하나님의 담금질은 멈추질 않으신다. 우리의 죽겠다는 아우성도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그 이유는 나를 사용하여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육)을 신뢰하는 사람은 사용치 않으신다. 만일에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데도 쓰임 받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쓰심이 아닐 수 있다. 만일 부서짐 없이 형통하거나 충만하다면 우린 곧 위험한(?) 산신령이 됨을 알기에 섬세하신 하나님은 지독한 곤고함과 기다림을 통해 우릴 참으로 신령하게 만들어 가신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하지 않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면 어찌되었을까? 야곱에게 20년의 잡초 같은 삶이 없었다면 모세에게 40년의 처절한 고독과 기다림의 세월이 없었다면 요셉에게 13년의 한(限)이 없었다면 어찌됐을까? 기다림 없고 대가없는 축복은 축복이 아니다. 기근 없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듯 고통 없는 축복은 오히려 저주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을 빼라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살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갈등하고 곤고하다. 지금 우리의 고민과 염려의 대부분은 안 죽으려 함이며, 안 썩으려 함의 충돌이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육신의 힘이 빠져야 하나님이 오신다. 사실 우리의 기다림보다도 우리의 자아가 깨지기 바라시는 하나님의 기다림이 더 처절하시다. 깨지지 않은 채 예수를 믿음이 벌써 몇 년째인가? 하나님은 최상의 시간을 아신다. 너무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시간에 오신다. 내 자아가 깨지고 내가 완전히 무릎 꿇는 그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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