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두 가지를 꼽으라면
하나는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미운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용납하는 것.. 나에게 상처주고,
손해를 끼치고,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끝없이
원수까지라도 용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시키시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말씀 속에 용서에 대한 해답이 있을 것이다.
우리도 용서를 하고 산다.
그러나 우리의 용서는
극히 계산적이며 조건적이며 충동적이다.
성경이 요구하는 용서는
무조건적인 용서와 대가없는 용서다.
우리가 예수를 안 믿으려면 몰라도, 계속해서 믿을 거면
용서라는 숙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교제)가 흐르지 않을 것이고
또 내 마음도 평안할 수 없기에 그렇다.
우리가 남을 미워하려면 먼저 내 속이 썩어야 한다.
마치 남의 얼굴에 흙을 묻히려면,
내 손에 먼저 흙을 묻혀야만 가능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미워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맘이
상해야 하는데 그 결과로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여러 가지 후유증이 찾아오게 된다.
그만큼 남을 미워하는 일과,
용서하는 일은 어렵고 힘든 것이다.
지금 누군가를 미워하는가?
그렇다면 억지로 그 사람을 용서하려 시도하지 말라.
그 용서는 흉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에게는 용서의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누구를 용서하고..
용납하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생각만 해도 죽이고 싶고
피가 거꾸로 흐를 만큼 미운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 문제를 덮어두고 세월만 흐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반드시 한번은 부딪혀야 하고 해결해야 한다.
용서는 용납 치 못함으로부터 출발한다.
처음에는 저 사람 왜 저래? 라며
그 사람의 언행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함에서 비롯된다.
그러다가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점점 쌓이게 되고
그것이 발전하여 미움을 낳게 되는 것이다.
물론 순간적으로 내 인생을
망쳐 놓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가서 머리채를 붙잡고
땅에다 곤두박질쳐도 속이 풀리지 않을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와 미움을 숨기고는,
맑고 투명한 영성을 소유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주님과 원활한 교제를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의 감정은 결국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병들게 할뿐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용서와 용납의 문제를 해결하고
처리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용서를 떠올릴 때
요셉과 스데반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요셉은 자신을 죽이려 공모하고, 자신의 청춘을
망가뜨린 형들에 대한 미움의 문제가 있었고
스데반은 자신의 설교를 못 마땅하게 여겨 돌을 들어
자신을 죽이는 자들에 대한 미움의 문제가 있었다.
나에게도 이런부류의 원수 같은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어떻게 용서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용서할 마음을 주님께서 주셔야 가능하다.
인간의 용서는 한계가 있고,
반드시 대가를 요구하고, 조건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미움과 원한의 마음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용서와,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이식시켜 주셔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루어지는 용서는
극히 충동적이며 순간적이기 때문이다.
요셉은 어떻게 해서 자신을 죽이려했고
자신을 애굽의 노예로 판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얼마든지 형들에게 복수할
위치와 힘이 있었던 그때에 말이다.
요셉은 과거의 형들과의 일들(사건)을
하나님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형들이여! 두려워 마소서..
형들이 나를 이곳으로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생명을 구하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앞서 보내셨나이다.
결국 용서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이 변하고
영적인 문제로 접근해야만 실마리를 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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