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속담에 "단단한 쇠는 두드려서 만든다"는 말이 있다.
살다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두드리고 흔드실 때를 만난다.
그냥 내버려두셔도, 힘든 일이 많은데
흔드심과 두드리심이 멈추지를 않는다.
어떤 때는 '왜 나만 두드리시느냐고?'
항의도 하고
'왜 나를 이토록 모질게 흔드시느냐고?'
'이제 그만 좀 하시라'고 애원도 해 보지만
하나님의 흔드심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우리 철부지 인생은,
하나님의 두드리심으로 철이 들고
우리의 신앙과 삶의 깊이는, 주님의 흔드심의
깊이와 비례함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다 약하다.
그러나, 두드리면 점점 강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다 요동한다.
그러나, 흔들면 산성(山城)이 된다.
허버트는 " 큰배는 깊은 바다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큰 믿음, 큰 성숙, 큰 축복, 큰 응답은
반드시 큰 흔드심을 통하여 주어진다.
하나님은 구원 말고는 거저 주시는 것이
별로 없으시는 듯 하다.
반드시 침묵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행함으로 축복에 이르게 하시고
흔드신 후에 응답하시며 또한
막으심으로 열어 주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25년 동안 흔드셨다.
그후 아들을 주셨고, 또한 그를 흔드신 후에
'여호와이레'의 축복으로 찾아 오셨다.
야곱을 향하신 험악한 흔드심은
21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마침내 얍복강 나루터에서
항복(포기)한 후에야 야곱의 흔드심은,
요동치 않는 축복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요셉은 13년을 흔드셨고,
모세는 80년을 흔드셨고,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아직도
흔들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인생은 마치 유격 훈련장과 같은 곳이다.
잠시도 쉴 수도, 쉴 곳조차도 없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푸른 풀밭,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기 전에 반드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부터 지나게 하신다.
하나님은 유격훈련장의 조교와 같으신 분이시다.
우리를 훈련장에 몰아넣으시고,
더 강도 높은 고난도의 훈련을 요구하신다.
눈물과 진땀이 범벅이 되는
그곳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신다.
훈련장에 일단 들어오면 훈련을
안 할 수도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훈련을 이겨내야 되고, 끝까지 마쳐야 된다.
군인들이 가장 미워하고 싫어하는 대상이
유격장 조교이다.
빨간 모자를 눌러쓴 조교들을
보기만 해도 몸서리친다.
그러나, 훈련을 마치는 날에 훈련생들은
바로 그 조교들을 헹가래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왜냐하면, 강한 군사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유격훈련을 마친 군인과 그렇지 못한 군인의 차이는
실로 비교가 안 된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흔드심에 대하여
우리는 원망도 하고 푸념도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흔드심은 망하게 하심이 아니라
잘되게 하심이며 죽게 함이 아니라,
살게 하려 하심이다. 그 언젠가 나를
그렇게도 혹독히 흔드신 하나님에 대하여
춤추며, 간증하며, 감사하게 될 날 올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알리라.
왜 그렇게 흔드셨는지를..
세상은 전쟁터와 같다.
전쟁터에서는 강한 군사만 살아남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한 군사로 훈련되기를 원하신다.
그러기에 흔드심은 그때를 위한 훈련과정일 뿐이다.
몸에 좋은 약이 쓰다는 말이 있다.
훈련은 특권이다.
흔드심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축복코스이다.
딸의 병을 가지고 찾아온 수로보니게 여인을
주님은 흔드셨다.
그러나 이 여인의 믿음은
'흔드심은 주님의 본심이 아니라'는
확신에서 시작되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애가3:33)
큰 응답과 큰 축복은 큰 흔드심을 통하여 찾아온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많은 흔들림을 당했었다.
비온 후에 땅이 더 굳어지듯 흔들림 후에,
우리의 삶은 성숙하고 믿음은
강한 산성(山城)이 되어진다.
그러면 주님이 왜 우리를 흔드실까?
첫째로, 진짜 믿음을 확인하시기 위해서이다.
이래도, 나를 신뢰하느냐?
그래도, 믿음으로 살수 있느냐?
그래도, 감사할 수 있느냐?
그래도, 기도가 되느냐?
욥은, 진짜 믿음의 사람이었다.
삶 전체가 흔들릴 때, 욥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원망한 적도 없었다.
그 요동치 않는 믿음 위에
갑절의 축복을 받지 않았던가?
흔드심의 목적과 끝은 고난이 아니라 축복이다.
두 번째는 축복 받을 그릇을
미리 준비시키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흔드심을 통하여 크고 거룩한 그릇들을
준비케 하시고 그것을 통과한 자들에게
하늘의 온갖 신령한 복과 은혜를
그 그릇에다 차고 넘치도록
부어 주시려는 것이 바로 그분의 본심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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