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내면을 헤집어 보면
억압된 분노의 감정이 있다.
다만 개인마다 온도차가 다를 뿐이다.
우리주변에 보면 화를 다스리지 못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아예 신세를 망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만큼 우리 안에는 용암처럼 솟구치는
분노(혈기, 화)의 감정이 있다.
누구나 분노의 대상은 다를 수 있지만
분노의 감정만큼은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대상이 하나님일수도 있고, 그 누구일 수도 있으며
바로 자기 자신 일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의 힘이나, 수양이나, 의지나
이성적 에너지를 빌어서 그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물론 그중에는 제어하지 못한 분노의 폭발로
자신은 물론 주변사람들을 당황케 하며
치명적인 피해(상처와 실망)를 주곤 한다.
평상시에는 순한 양 같던 자가, 어떤 기회나 여건이
주어지면 상당한 파괴력으로 분노를 표출시킨다.
그때 주변 사람들은 당황하게 된다.
전혀 저럴 사람이 아닌데 왜 저럴까?
그리고 본인도 놀란다.
내가 왜 그랬나? 후회하며 곧 자책에 빠지곤 한다.
그리고는 늘 상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욱~ 할 때뿐이고 뒤 끝은 없다고..
그러나 이말(변명)은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이미 폭발시킨 분노를 어찌할 것인가?
그 분노로 상처받은 사람들은 어떡하란 말인가?
이렇듯이 잠재된 분노를 주변사람들에게
폭발시키는 증상을 정신의학에서는 과민증이라 말한다.
일종의 병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병이란 말은 이미 자신의 힘으로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자신은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분노가 뿜어져 나오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마치 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온순해진다.
이런 과민적 분노의 현상이 성인들에게 주로
나타나지만 아주 어린아이들에게는 ADHD로 나타나
주변의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분노가 폭발하는 신경증적 현상도
약물이나 독서, 음악, 미술로도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역시 영적으로 접근해야
근원적인 치유와 해결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분노에는 뿌리가 있고 원인이 있다.
그 뿌리의 중심에는 자기연민과 치유 받지 못한 상처,
그리고 열등감이 꿈틀거린다.
물론 평시에는 잠복해있기 때문에 본인은 물론
그 누구도 예측이 어렵다.
그러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
분노가 임계점에 도달하게 된다.
그때는 어떤 제어 장치도 의미가 없어지는 때이다.
이런 현상을 욱~ 하는 성격으로 오해하고
방치해서는 아주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속히 치유 받아야하고 가장먼저
처리되어야 할 암적 존재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나이를 먹고 수양을 하고, 결심을 해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분노의 감정은 폭발될 것이다.
그래서 이런 분노는 시한폭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화가 잘 치밀고 혈기를 자주 내는
원인으로 유전 적 요인과 질병 적 요인이 있다.
실제로 간에 질병이 있거나, 마음에 상처가 많은
사람은 보통 사람에 비해 부정적이며 짜증이 많다.
그러나 상당부분의 분노는 후천적 요인으로
능히 치유가 가능한 것들이다.
열등감, 애정 결핍증 자존감결여와 후천적 상처는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관심과 사랑을 공급받으면
호전 될 수 있다.
그러나 뿌리 깊은 분노와 화는 반드시 온유하신
성품을 소유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만 한다.
그 분이 오셔야만 누그러지고 제어할 수 있다.
부글부글 끓던 분노의 감정들이 처리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40년 동안 분노와 원망이 많았다.
그 이유는 430년 동안 노예로 지내오면서
사랑을 받지 못한 열등감과 상처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다.
그 만큼 분노의 문제는 완치가 된 듯, 처리가 된 듯,
해결 된 듯 하다가도 또 누가 격동시키면
용수철처럼 튀어 나오는 것이 그 특징이다.
결국 두 가지 방법 외에는 길이 없다.
하나는 날마다 죽는 길과 또 하나는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다.
그 분 앞에 나아가 우릴 분노하도록
충동질하는 세력을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분노의 감정을 치유 받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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