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는 고통스런 곳이다.
광야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곳이며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곳이며,
뱀과 전갈이 우글거리는 장소이며
먹을 음식도 마실 물도 없는 곳이며
하루하루가 한숨과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찬 곳이다.
먹을 것과 입을 옷과 잠잘 곳을
모두 걱정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며,
외롭고, 고독하고, 답답하고, 지루하고,
사방이 막힌 곳이기도 하다.
그러한 광야를 성경적으로
어떻게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최악의 환경이 맞다.
그러나 영적인 시각과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해석은 다르다.
광야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며,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먹이시며 마시게 하시며,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며,
뱀과 전갈의 위험과, 고독과 외로움의 문제와
더움과 추위의 문제로 부터 철저히 보호하시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직접 공급하시는 장소이기도 하다.
날마다 힘들고 날마다 걱정해야 하지만
날마다 하나님이 가까이에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곳이기도 하다.
광야는 기도하는 곳이며
광야는 응답이 신속한 곳이며
광야는 하나님만 절대 신뢰하는 곳이기도 하다.
누구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는
생존자체가 어려운 곳이 광야인 것이다.
단한마디로 정리하면
광야는 처절하게 힘든 곳이다.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이지만,
광야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이며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있는 곳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통해서
그토록 꿈꾸던 가나안으로 입성하였다.
가나안은 광야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먹을 것이 풍성했고, 입을 옷과, 쓸 것과,
누릴것으로 가득 찬 곳이 가나안이었다.
위험한 일도 뱀도 전갈도 없었으며,
더위도 추위도 없는 곳이었다.
외로움도 고독함도 없었고,
마실 물도 먹을 양식도 차고 넘쳤다.
하루하루 살맛이 나는 현장이었으며
날마다 신바람 나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이 가나안이었다.
그러자 이스라엘백성에게 광야에서의
하나님과의 달콤했던 첫사랑의 경험들은
한낱 추억거리로만 기억될 뿐이었다.
가나안의 풍성함속에 광야에서 경험했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세밀하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하여 무뎌지기 시작하였다.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이상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더 이상 새벽을 깨우며
힘들게 만나를 먹으러 나갈 이유조차도
사라졌을 것이다.
더 이상 간절한 예배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더 이상 열심히 하나님을 갈망할
이유도 사라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하지 않아도
갈망하지 않아도 열심을 내지 않아도..
얼마든지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쓸 것과
형통함과 누릴 것이 풍성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차츰차츰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시작했고
기도를 놓치기 시작했으며
결국은 예배와 하나님과의 교제마저 종교적이고
교리적인 것으로 추락하기 시작했으며..
하나님에 대해서 부담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저들의 마음은 완악해졌으며
스스로 높아졌고 급기야 그들은
하나님을 마음에서 멀리하고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으며
가나안에 입성하여 형통하고 축복받은 것이
자신들의 노력과
수고의 결과라 착각하기 시작했다.
이젠 어디를 둘러봐도 하나님은 없었다.
하나님을 믿지만 가짜였다.
예배를 드리지만 형식적이었다.
기도는 한다지만 타성에 빠진
습관적인 기도였다.
필요한 것이 있지만
더 이상 하나님께 구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나님과 교제가 끊기고 영혼은 피폐되고
삶의 가치와 목적은 상실되고
동물처럼 먹고 즐기고 아이 낳고 공부시키고
쌓아놓고 살고 하나님과는
구만리 장천 멀어져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인가?
사람은 누구나 등 따습고 배부르면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누가 아무 일 없이 편안하고 형통한데
열심히 예배자로 헌신하겠는가?
그래서 '광야가 진정한 축복의 현장!'
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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