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물에서 살도록 지었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도록 지음 받았듯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며
은혜 안에 살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물을 떠난 물고기가 잠시도 살수 없듯이..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을 떠나서는
사람답게 살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하나 있다.
행복이 '눈으로 보여 지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에 있다..'
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행복은 '순간'에 불과하다.
'오래가지 못하고 영원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람의 마음은 무저갱과 같아서
아무리 채워도 채워도 그때뿐이며
또 다른 것으로 채우려하기 마련이다.
1억이 있는 사람은 10억을 바라고,
10억이 있으면 100억을 바라는 것이
사람들의 끝없는 욕심이다.
내가 어릴 때 우리 가족은 물을 길어다 먹었다.
그때 가족의 소원은
집안에 펌프가 있는 것이었다.
그 후 얼마 지나 펌프를 설치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 수돗물만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지금 각 가정마다
수돗물이 없는 집이 어디 있는가?
그렇다고 '수돗물 때문에 행복하다..'고
노래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전도사 시절 어느 집사님으로 부터
삐삐(호출기)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그때의 기분은 잠 못 이루도록 행복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을 소유하고도
그것 때문에 잠 못 이룰 정도로 행복하지는 않는다.
TV가 없던 시절에 만약 우리도
흑백 TV를 소유하게 되면
춤을 출 듯이 행복할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제는 'LED TV냐? UHD 초고화질 TV냐?'
를 놓고 시름한다. 이렇듯이
소유로 인한 행복은 순간에 불과한 것이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속였다.
사람은 말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
만져 지는 것, 소유로 행복해 진다고 말이다.
그래서 마귀가 속이는 대로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선악과를 따 먹었다.
그때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말씀)로 살려하지 않고
보여지고, 만져지고, 느껴지는 것(감각)으로
사느라 부질없는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집도
막상 소유하면 별것 아니다.
얼굴이 예쁘고 반반한 배우자를 얻으면
인생이 행복할 것 같지만 그것도 별것이 아니다.
좋은 차에다 수억 원의 연봉을 받으면
행복할 것 같으나 그것도 별것 아니다.
세계여행을 다니는 사람도 부러워하지 말라.
다녀보면 내 집이 최고다.
하나를 이루면 둘을 이루고 싶고
둘을 가지면 셋을 소유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하지만
소유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을
말씀으로 살도록 디자인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겉만 채우려 하지 말고
속사람을 채우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속이 허할수록 의상도, 화장도, 외부 인테리어도
화려하게 보이려고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속이 꽉 찬 사람은 그럴 필요가 없다.
성도란 속이 꽉찬 사람이며,
속을 채우려 평생을 달려가는 자이다.
아가서에 보면
'겉은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속은 솔로몬의 휘장 같다'는 말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표상이다.
이제 우린 무저갱과 같은
겉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지 말고
속을 채우기 위해 은혜로 살아야한다.
우린 적어도 화장실 숫자나 늘리고,
자동차의 배기량이나 키우고,
많은 소유나 차지하라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한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디에 살까'를 염려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하는 걱정이다.
그저 보기 싫지 않게 입으면 되고,
영양실조 걸리지 않을 만큼 먹으면 되고,
비가 새지 않는 집에만 살면 그것이 축복이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은혜로 살도록 애써야 한다.
우린 어떤 경우에도
말씀으로 삶의 원동력을 삼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복과 자족의 조건도
풍성한 은혜와 말씀
그리고 내적인 채움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물고기가 물을 떠나지 않는 이유이며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 하는 이유이며,
성도가 말씀에 목말라 해야 할 진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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