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짧지 않은 인생여정 속에서 깨달은
여러 가지 교훈 중에 하나는 세상에는
까칠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까칠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세상이 그만큼 팍팍하다는 뜻이며 그만큼 우리는
상처를 많이 받으면 살아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이 철이 들고 성숙해 진다는 것은
소심한 사람이 대범해지며, 속 좁은 사람이
포용력이 큰사람으로 바뀐다는 의미이다.
까칠하다, 까탈스럽다, 깐깐하다는 뜻은
내 마음에 안 들고 내 뜻에 안 맞을 때,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며 범사에 기준의 잣대가
자기중심인 경우를 말한다.
그래서 이건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이건 이래야 되고, 저건 저래야 되고..
이런 까탈스러움은 상대방에게 끝없이
무언가를 요구하게 되고, 그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시키며 그래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정죄하고 무시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의외로 까칠한 부분이 많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성격, 인간관계, 부부관계 등등..
그러나 내 자신의 까칠함이 오히려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예수를 믿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산다는
소위 영의 사람들마저도 여전히 까칠하다 못해
송곳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까칠한 내 앞에 서면 작아지고,
긴장하고, 경직되고,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무엇하나 용납하지 못하는 까탈스러움 때문이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꼭 지적하고, 따지고,
추궁하고, 가르치려고 하기 때문이다.
누가 당신을 선생(교관)으로 세웠는가?
주님이 언제 당신에게 그렇게 까탈스럽던가?
까칠한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자신을 어느 정도는 알게 된다.
"나도 성격이 참 못됐었구나"하고..
그러면서도 부모 탓을 하거나,
환경 탓을 하며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그러나 깊이 통찰해 보면 까칠한 사람의 내면에는
치유 받지 못한 상처와, 열등감과, 자기의 의(義)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본래 못난 사람(바보)은 남을 힘들게 하거나,
가르치거나, 상처를 주지 않는다.
반드시 좀 똑똑하다고 착각하고 완전주의에 빠져
거들먹거리는 자들이, 자신의 굴절된 자아를 가지고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다.
마치 율법주의자들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까칠한 사람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를 하루 종일 들볶는다.
깐깐한 사람은 그냥 넘어가도 될 일도
절대로 지나치지 못한다.
반드시 지적하고 추궁해야 직성이 풀린다.
까칠한 사람은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다.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은데 말이다.
"은혜 받았다.." 는 말을 함부로 사용치 말자.
은혜를 받으면 까칠했던 사람도 점점 바뀌어간다.
좀더 둥글둥글 해진다.
송곳 같던 성격도 푸근해진다.
바울의 권면처럼 더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
우리의 삶은 그리 길지 않다.
한번 뿐인 짧은 인생을 까칠함으로 낭비하지 말자.
나의 까칠함으로 누군가를 힘들게 하지말자.
때로는 그냥 웃어넘겨라.
그냥 못 본척해 주라.
그냥 모른 척 해 두라.
그것이 우리의 인생과 영혼을 위해 좋다.
나도 까칠함으로 한 때 명성(?)을 날렸었다.
그러나 다 소용없는 일이며 부질없음을 이제서 깨닫는다.
지금은 참회하는 마음으로 웬만한건 그냥 지나치려한다.
아니 저절로 그렇게 되어간다.
나의 까탈스러움 때문에 눈물 흘렸을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며 이제는 푸근함과, 넉넉함과, 포용으로
더 많은 이들을 위로하며 치유하기를 소원한다.
사람의 노력과 결심은 작심삼일이다.
성령이 오셔야 까칠함은 푸근함으로 달라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인생이 피곤한데
나의 까칠함으로 남을 힘들게 하지말자.
나도 내 자신이 맘에 안 드는데,
누군들 내 맘에 들겠는가?
모두가 다 나와 다름을 용납하고 포용하자.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미션이고 비전이며
가장 좋은 은사가 아닐까?
주여! 내게 넓은 마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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