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원에 심장병으로 입원한 환자가 있었다.
그 환자의 수술을 앞두고 주치의가 회진차
그 환자를 방문하였다.
환자는 주치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심장수술을 몇 번이나 경험해 보셨습니까?
그러자 주치의는 "이번이 처음입니다"라고 말했다.
환자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움과 불안함에 떨며
어떻게 중요한 심장수술 경험이 한번도 없으시면서
수술을 하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주치의는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명문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사람의 인체에 대해
그리고 심장에 대하여 전문적인 지식이 많습니다.
나는 대학을 다닐 때도 항상 우등생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 염려 마시고 저에게 다 맡겨 주세요.
이 말을 듣고서 안심하며
심장수술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
환자를 위한 수술은 수준 높은 지식과
의욕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실습과
다양한 임상경험으로 얻어진 산지식이
의사의 몸에 배어 있을 때에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신앙생활도 다르지 않다.
말씀을 아는 것과 말씀을 배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이 몸에 배어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연구소나 도서관에서
배출되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연단을 통해서
훈련되어 지는 것이다.
사도바울의 믿음은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 증명되었다.
욥의 믿음도 혹독하고 처절한 잿더미에서 빛을 발했다.
다니엘의 믿음은 처형위협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었다.
촛불의 진가는 어두울 때 증명된다.
이제 우리의 믿음도 유라굴로 광풍가운데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말씀연구소 직원이 아니다.
성경도서관 사서가 아니다.
우리는 강한 용사이며 필요하다면 주와 복음을 위하여
죽어야 하는 예수의 제자들이다.
참 믿음의 사람은 실제상황이 발생했을 때 머리 속에
이론으로만 되뇌이며 마냥 주저앉아있는 자가 아니라
즉각 그 믿음을 통해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자다.
요즘 은혜와 영의 세계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경험하지 않고 주위만 맴도는 성도들이 늘고 있다.
그냥 어제 믿던 대로, 어제 하던 대로, 타성에 젖어
마지못해 몸만 교회에 가서 참석하고 사역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중요하고,
보혈의 능력에 대해 귀로 들어서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혈의 능력을 사용해서
단 한 가지라도 문제를 극복하는 경험이 중요하다.
배가 고플 때 밥의 영양가에 대해서 배우고
암기하는 것은 굶주림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직접 밥을 해서 먹어야 한다.
신앙은 관념이 아닌 경험을 통해 익숙할 정도로
몸에 배어 있어야 실제로 문제 앞에서 적용할 수 있다.
제자는 지식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주님에 대해 이론적으로 얼마나 많이 아느냐 하는 것보다
실제로 주님을 만지는 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혈루증에 걸린 여인은 주님 몸을 직접 만졌고
다른 사람들은 주님 가까이에서
주님을 부대끼며 밀치기만 하였다.
듣고 배워서 알고 있는 말씀을
직접 사용할 때 역사가 나타난다.
생각이나 지식만으로 안 된다.
기독교는 명상의 종교나 수양하는 종교가 아니라
임재의 신앙이다.
오늘 우리의 위기는 문제가 많은 것이 아니라
믿음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남에게는 잘 가르치면서 막상 자기 앞에 문제가 발생하면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로 나가지 못하고
문제를 주님 앞에 들고 나갈 능력이 없는 것이다.
올해는 실제 상황 앞에서
써먹을 수 있는 믿음을 갖기 위해 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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